스타트업 vs 대기업

스타트업을 하면서 나름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"OOO 대기업이 당신이 방금 말한 것과 동일한 디자인과 컨셉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?"와 같은 소위 대기업이 베끼면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질문이다. 그리고 보통 그 대기업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가장 많이 언급된다. 이런 질문은 생각보다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데, 그건 이 질문이 어떤 정곡을 찌르는, 예리한 질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이 질문을 한 사람과 대답을 해야하는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기 때문에 뭐라 답을 해야 그냥 이 상황을 나이스하게 넘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기에 그렇다. 그래서 보통 이럴 때 얘기하는 답변은 속 편한 '데이터'다. 대기업이 쉽게 넘어올 수 없도록 데이터를 미리 많이 쌓아서 진입장벽을 구축하겠다는 논리는 그럴듯해서 상황을 넘길 수 있다.

그런데 내가 이 질문에 실제로 하고 싶은 답은 그냥 "(우리 사업을 따라하면) 이겨야죠"다. 이 짧은 네 글자 대답이 질문자와 나 사이의 멀고 먼 거리를 지나면 그냥 "대책없는" 스타트업이 된다. 창업자들이 바보도 아니고, 그 자리에서 나름의 경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여러 말이 되는 소리들을 늘어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경쟁 우위들을 나열하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동시에 알고있다. 그래서 말이 되는 장황한 소리를 늘어놓기가 싫은 것이다. 대기업이 우리 사업에 뛰어 들었을 때, 바뀌어진 지형과 정세를 읽고 거기에 대처하면서, 새로워진 시장에서 (사용자의) 새로운 고통과 문제를 발견해 더 잘 해결하는 힘이 우리에게는 있음을 증명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. 그래서 그냥 대책이 없는 게 대책일 수 밖에 없다고, 진심으로 생각하게된다.

그러던 중 오늘 배기홍씨의 작은 회사 과소평가 말자를 읽었는데 "사람들은 항상 대기업을 과대평가하고, 작은 스타트업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"는 말이 참 공감이 간다.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볼 때는 그냥 우리가 하는 일과 네이버·카카오가 하는 일이 웹이나 앱을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할 거라 지레짐작한다. 그런데 그건 그냥 더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두면 PC방이 그 동네에서 대박날거라고 생각하는 거랑 비슷하다. 타당하나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수많은 변수 중 일부만 그렇다. 대기업이 하면 더 잘 할거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믿음도 이런 원리라고 생각한다. 반대로 나는 스타트업이 하면 대부분 더 잘 할거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.